[202108]이달의 훈화
성모승천대축일 - 연중 제24주간

정홍 사도요한 신부

정홍 사도요한 신부는 2010년 8월 춘천교구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2010년 9월부터 2014년 1월까지 퇴계성당, 솔올성당, 교동성당 보좌신부를 지냈고, 2014년 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3년간 일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했다. 현재 동해시 묵호본당에서 사목하며, 북한학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성모승천대축일(8월 15-21일)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모후시여!”

1950년 11월1일 모든 성인 대축일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미사 강론 때 성모님의 ‘몽소승천’을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나는 온 교회에 큰 기쁨을 전하기 위하여,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를 통하여 예수님 바로 그분에게서 나에게 주어진 권위에 근거하여, 장엄하게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입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께서는 이 지상 삶을 마치신 다음 영혼과 육신 모두 하늘 영광에 올려지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 아드님 예수님과 같이 돌아가셨지만, 그분 죽음의 순간에 그분의 육신은 영혼과 함께 하늘 영광에 올려지셔서 썩지 않으셨습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 둘째 독서인 코린토1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부활하신 열매 가운데 맏물인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께 속한 이들이 다시 살아난다고 말합니다. 성모님은 그분께 속한 이들 가운데 맏물이 되신 분입니다.
이는 성모님께서 한평생 하느님께 성실하셨기 때문입니다. 폭군 헤로데를 피해 이집트로 피난을 가셨다가 다시 나자렛으로 돌아오셔서 30년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아들 예수님을 위해서 사셨습니다. 아들 예수님의 공생활 내내 먼발치에서 그분께 성실하셨고, 예수님 십자가 밑에서, 그리고 오순절의 성령 강림 때에 교회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 첫째 독서인 묵시록은, 크고 붉은 용으로 표상된 악마가 여인이 낳은 아들을 삼켜버리려던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악마는 여인의 아들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못했습니다. 악마는 성실하게 예수님 곁에 계셨던 성모님을 거슬러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성모님의 파수꾼인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그 누구보다 성모님께 속한 이들 가운데 맏물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의 영광으로 불러올리심을 받으신 성모님처럼 한평생 하느님께 성실하시어, 성모님의 맏물이 되고, 성모님에 이어 하늘나라의 소출로 수확되기를 바랍니다.


연중 제21주간(8월 22–28일)
“탄복하올 어머니시여!”

우리는 일생일대의 선택의 기로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선택의 기준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지?’, 아니면 ‘원하지 않으시는지?’입니다.
우리는 성모 승천 대축일 전, 삼 주일 연속 요한복음 6장의 성체성사에 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번 연중 제21주일 복음은 성체성사에 관한 긴 말씀 이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들을 선택의 기로 앞에 서게 하시는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하고 물으셨죠. 예수님의 이 말씀에 베드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인 예수님을 선택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선택한 베드로의 본보기는 성모님이셨습니다. 성모님께서도 일생일대의 선택의 기로 앞에 서시었었지요.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의 집으로 찾아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전하자,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말씀을 선택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성모님께서 믿음의 선택을 품에 안고 엘리사벳을 찾아가셨을 때, 그녀는 성모님의 선택을 축복하셨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택하셨고, 하느님의 말씀이 당신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말씀을 잉태하시고, 말씀께 순종하며 사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참으로 탄복할 만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선택을 하셨기에, 그분은 탄복하올 어머니이십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도 선택의 기로 앞에 섰을 때, 성모님처럼 하느님 말씀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하느님 말씀과 그 하느님 말씀이 원하시는 바를 선택하며 살아가면, 탄복하올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탄복하시게 될 겁니다.


연중 제22주간(8월 29일-9월 4일)
“지극히 깨끗하신 어머니시여!”

교회는 성모님을 잉태되신 순간부터 구원받은 분이시라고 가르칩니다.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라는 말씀을 들으신 성모님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평생 어떠한 죄의 더러움에도 물들지 않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어떠한 죄도 범하지 않으셨기에, 사실 그분은 법도, 규율도 필요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법이 필요 없을 만큼 흠 없으신 성모님께서는 누구보다 법을 충실히 준수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지 사십일 째 되던 날, 정결례를 거행하러 예루살렘으로 가셨고(루카 2,22), 해마다 파스카 축제를 지내시러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루카 2,41). 이는 구약시대 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법규를 준수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탈출 13,12; 민수 28,16).
연중 제22주일 독서에서 모세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을 통해서 그들을 당신의 사랑 안으로 품으신 하느님의 지혜를 찬미하자고 권고합니다.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외적인 준수를 넘어서, 율법을 지키는 사람의 마음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성모님은 율법의 외적인 준수를 넘어서 언제나 당신의 마음을 거룩하게 가꾸셨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깨끗하신 어머니이십니다.
야고보서의 저자는 우리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라고 권고합니다(야고 1,21).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마음 안에 심어진 하느님의 말씀을 공손하게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외적인 율법 준수를 넘어 당신의 마음을 거룩하게 가꾸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이며 법규가 자리 잡은 성모님의 마음은, 우리의 마음이 거룩한지 아닌지 식별하게 하는 거울과 같고 기준이 됩니다. 성모님을 더욱 특별히 공경하는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여 마음을 거룩하게 가꾸신 성모님의 신심을 본받아 살아가는 레지오 단원이 되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연중 제23주간(9월 5-11일)
“이주민의 위로자시여!”, “근심하는 이의 위안이시여!”

루카복음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 때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7) 우리 주 성자께서 구유에 누우시던 때, 성모님께서는 가난하게 되셨고, 가난한 이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마태오 복음은 성가정의 난민 생활을 이렇게 보여줍니다.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마태 1,14) 우리 주 성자께서 이집트로 가시던 때, 성모님께서는 이주민이 되셨고, 이주민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작년 세계 가난한 이의 날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이 점을 말씀하셨습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소외받는 이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친히 마구간에서 하느님의 아드님을 낳으셨기 때문입니다. 헤로데의 위협 때문에, 성모 마리아께서는 당신 배필이신 요셉과 어린 예수님과 함께 다른 나라로 피신해 가셨습니다. 성가정은 여러 해 동안 난민으로 살았습니다.”
연중 제23주일 둘째 독서 야고보서는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복음의 예수님은 귀먹고 말 더듬는 이의 귀와 입을 열고 풀어주셨습니다. 이는 유배지에 끌려가서 마음이 불안하게 된 이들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첫째 독서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가난하셨고 난민 생활을 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도 예수님과 함께 스스로 가난을 겪으셨고, 난민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어렵고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헤아리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모님을 “이주민의 위로”이시며, “근심하는 이의 위안”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도 우리 주위의 소외된 이주민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시고, 근심 가운데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위안을 주시며, 성모님의 사랑을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연중 제24주간(9월 12-18일)
“영신적 순교자시여!, 순교자들의 모후이시여!”

성모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셔서 율법에 따라 제물을 바쳤을 때, 의롭고 독실하게 살아온 시메온을 만나십니다. 시메온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나서 나자렛 성가정을 축복하신 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ㄴ-35)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때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뒤 사십일 째 되시던 날이었는데, 성모님께서는 예수님 십자가 죽음의 날에 이 말을 다시 기억하셨을 겁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순간을 이렇게 전합니다. “군사들이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요한 19,3-34.)
성모님께서는 아들 예수님의 모든 길에 동참하시며, 마지막 십자가까지 함께 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렇게 성자의 육신의 죽음에 동참하시며, 영신적 순교자가 되셨습니다. 군사의 창이 성자의 옆구리를 찌를 때, 성모님의 영혼도 칼에 꿰찔렸습니다. 성자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육신의 피와 물은 성모님의 태 안에서 나왔으니, 죽은 성자의 육신이 피와 물을 흘리실 때, 성모님의 영혼은 피를 흘리며 순교하셨습니다.
교회는 9월을 순교자성월로 보내며, 15일에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하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을 보냅니다. 그리고 당신의 영혼을 온전히 아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신 성모님을 영신적 순교자로 부르고, 순교자들의 모후로 공경합니다. 우리는 특별히 이달에 피를 흘리며 믿음을 증거한 순교자들을 기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도, 순교자들의 모후이신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이 시대의 영신적 순교자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