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신앙공부의 기쁨과 즐거움
기도의 거룩함

정희완 사도요한 신부 안동교구

기도와 거룩함
현대 세계에서 거룩함의 징표는 ‘항구함과 인내와 온유함’의 덕목으로, ‘기쁨과 유머 감각’의 모습으로, ‘담대함과 열정’의 자세와 태도로, ‘공동체성’으로 드러납니다. 이처럼 거룩함은 다양한 덕목과 모습과 태도와 특성으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거룩함의 징표 밑바닥에는 언제나 지속적인 기도의 정신과 태도가 놓여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굳이 긴 시간이나 강렬한 감정을 쏟는 그러한 기도가 아니어도 기도 없는 성덕을 믿지 않습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47항) “거룩한 사람은 기도의 정신과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에 대한 갈망을 특징으로 합니다.”(147항) 신앙인 개개인의 특성과 스타일에 따라 거룩함이 표현되는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그 모든 거룩함의 징표들은 언제나 기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것이며, 하느님을 향한 열망입니다.(148항)

기도에 관한 신학적 성찰
기도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우정 어린 대화이자, 빈번한 독대입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49항) 대화와 독대는 시간을 요청합니다. 하느님께 시간을 내어드리는 일이 기도의 시작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기초위에서, 하느님과 만남에 열린 마음으로 응답하는 일입니다.(149항) 기도는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배우는 일입니다.(150항) 온전히 주님께 귀 기울이기 위해서 당연히 침묵이 요청됩니다. 기도의 침묵은 세상에 대한 도피나 거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152항) 기도는 주님의 현존 안에 조용히 머무는 일이며 주님의 심장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151항)
하지만 동시에 기도는 우리의 삶과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기도는 역사 안에서 하느님께서 하신 은총의 일들을 기억하는 일입니다.(153항) “여러분이 기도할 때 각자 자신의 역사를 떠올려 보십시오. 거기에서 풍성한 자비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주님께서 여러분을 언제나 생각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더욱더 깊이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결코 여러분을 잊지 않으십니다.”(153항)
기도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기도는 그 내용의 측면에서 탄원, 청원, 전구 기도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탄원 기도는 하느님을 신뢰하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아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청원 기도는 흔히 우리 마음을 진정시키고 우리가 희망을 간직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전구 기도는 “하느님에 대한 신뢰의 행동이며 동시에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54항)
전구 기도는 특별한 가치를 지닙니다. 우리는 자칫 기도가 오직 하느님만을 생각하는 일이라고 좁혀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도 안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일은 분심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구 기도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언제나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전구 기도는 다른 이들에 대한 형제적 관심의 표현입니다. 다른 이들의 삶과 그들의 내밀한 고민과 고귀한 꿈을 우리가 감싸 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154항)
한편으로 기도는 그 형식의 측면에서 흠숭과 찬양, 침묵과 관상으로 표현됩니다. 기도는 무엇보다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는 일입니다. 성경 읽기는 가장 큰 기도의 하나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는 것은, 우리가 멈추어 서서 스승님의 음성을 경청하게 합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56항) 그리고 “성경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우리를 성찬례로 이끕니다. 성찬례에는 살아있는 하느님 말씀이 진실로 현존하기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성찬례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합니다.”(157항) 미사는 우리가 바치는 최상의 기도이며 공동체와 함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기도에 대한 인문적, 문학적 시선
기도는 따뜻한 대화입니다. 우리의 생은 외롭습니다. 이 조금은 외로운 생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 그 누군가와 진정한 대화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위로와 기쁨과 평화를 줍니다. 우리의 생은 자주 힘듭니다. 힘들 때 우리는 그 힘듦을 이야기할 수 있는 진정한 대화를 필요로 합니다. 그 대화가 설혹 어떤 뚜렷한 해결책을 주지 않는다고 해도 따뜻한 대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기쁘고 편안함을 경험합니다. 기도 역시 우리 인생에 있어서 우리에게 힘과 기쁨을 주는 따뜻한 대화처럼 신앙의 대화입니다. 신앙의 여정에서 기도는 우리를 정갈하게 하고 마음을 다잡게 하는 힘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따뜻한 대화를 나누는 일은 넓은 맥락에서 기도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행위입니다.
기도는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따뜻하게 부르는 것입니다. 기도는 이름을 부르며 시작합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를 찾는다는 것이며, 그를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찾음과 그리움에서 시작합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며,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행위입니다. 기도는 사랑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며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기도는 이상과 희망을 꿈꾸는 것입니다. 기도는 현실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비록 현실이 좌절하게 하고 힘들게 한다 할지라도 끊임없이 변화에 대한 꿈을 꾸며 사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사람이란 현실 타협자가 아니라 늘 변화를 위해 죽는 날까지 노력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기도는 성찰입니다. 기도는 타인을 판단하고 규정하고 비판하고 저주하는 일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느님 앞에서 자기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일입니다. 기도는 그 자체가 축복이며 은총입니다. 그저 기도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서 기쁨과 희망이며 은총과 축복입니다. 기도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기도는 희망의 기다림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눈을 감고 밥을 먹는다/ 눈을 감고 세상을 보고/ 눈을 감으면 씹는 밥알 한 알의 맛이/ 더 깊어지고/ 현란하게 채색된 세상이/ 한 장 수묵빛 그림이 되고/ ….. / 눈을 감는 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더욱 깊이 확인하고/ 깨닫고 사랑하기 위해서다”(홍윤숙 시인의 시, ‘눈을 감고’에서).
“빈 항아리는 기다리고 있다/ 비어서 막막한 가슴 열어 놓고/ ….. / 아침엔 저녁을 저녁엔 다시 아침을/ 기다리는 나날엔 희망이 있고/ 미완성의 시간은 꿈꿀 수 있기에/ 빈 항아리는 그 밖의 일을 알지 못한다.”(홍윤숙 시인의 시, ‘빈 항아리 2’에서).
기도는 눈을 감고 다르게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기도는 나를 비워내고 하느님을 기다리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