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마케도니아 두 번째 공동체 테살로니카

이창훈 알퐁소 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필리피를 떠난 바오로 일행은 암피폴리스와 아폴로니아를 거쳐 테살로니카에 이르렀습니다(사도 17,1). 암피폴리스는 필리피에서 남서쪽으로 50km쯤 떨어진 도시이고, 아폴로니아는 암피폴리스에서 다시 서쪽으로 50km 가까이 떨어진 고을입니다. 테살로니카는 아폴로니아에서 서쪽으로 50km 남짓 떨어진 도시입니다. 광대한 로마 제국을 동서로 연결하는 간선도로 ‘비아 에냐티아’가 이 도시들을 모두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저자가 암피폴리스와 아폴로니아를 거론하면서도 이 도시들에서 바오로가 한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바오로가 이 두 도시를 거쳐 간 것은 선교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음식을 구하고 잠자리를 얻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 안식일에 걸친 토론으로 형제들을 얻다
바오로 일행이 도착한 테살로니카는 오늘날 그리스 제2 도시로 테살로니키라고 불립니다. 테살로니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의 사위인 카산드로스(기원전 355~297)가 자신의 아내 이름을 따서 지은 도시입니다. 바오로 시대에 테살로니카는 마케도니아의 수도로서 행정, 교통, 상업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사실상 자치권을 행사하는 ‘자유 도시’였습니다. 유다인들도 적지 않게 살고 있었고 유다인 회당도 있었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이 방문한 여느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테살로니카에 도착해서도 먼저 유다인 회당을 찾습니다. 그리고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가지고 유다인들과 토론하면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시라고 복음을 선포합니다. 유다인 몇 사람이 감복해서 바오로를 따랐고, 유다교의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인 가운데 많은 사람과 적지 않은 상류층 귀부인들도 복음을 받아들입니다(사도 17,2-4).
그러자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이 시기하여 들고 일어납니다. 그들은 불량배들을 동원해 군중을 선동하게 하여 도시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그러고는 야손의 집으로 몰려가 바오로와 일행을 찾아내 백성 앞에 끌어내려고 했으나 찾지 못하자 ‘야손과 몇몇 형제’를 시 당국자들에게 끌고 가서 고발합니다. 고발 내용은 바오로 일행이 예수를 임금으로 여겨 황제의 법을 어기고 있는데 그런 자들을 야손이 자기 집에 맞아들였다는 것입니다(사도 17,5-7). 여기서 야손과 몇몇 형제들은 바오로가 선포하는 복음을 받아들인 유다인들을 가리킵니다(로마 16,21 참조).
바오로를 시기한 유다인들이 이렇게 고발하면서 시 당국자들을 자극했지만, 시 당국자들은 유다인들의 말을 그대로 듣지 않고 야손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에게서 보석금을 받고는 그들을 풀어줍니다. 테살로니카의 형제들은 바로 그날 밤에 바오로와 실라스를 베로이아로 떠나보냅니다(사도 17,10ㄱ).

형제들의 본보기가 되다
사도행전은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선교활동을 이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바오로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쓴 편지들은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생활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줍니다. 곧 바오로 일행은 테살로니카에서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합니다. 또 경건하고 의롭게 흠 잡힐 데 없이 처신합니다(1테살 2,9-10; 2테살 3,8). 말하자면 생업에 종사하면서 먹고살 것을 장만하는 가운데 복음 선포 활동을 수행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것은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2테살 3,9)이라고 바오로는 밝힙니다.
이런 내용은 복음 선포자의 자세와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함축합니다. 복음 선포자는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로써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말의 증언은 삶의 증거로 뒷받침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전문적인 복음 선포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신자라면 누구나 복음 선포의 사명을 지니고 있기에 모든 그리스도 신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선교는 ‘삶의 증거를 통한 복음 선포’ 또는 ‘생활 속 복음 선포’의 구체적인 본보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오로가 테살로니카에 머문 기간은 얼마나 될까요? 바오로가 테살로니카에 도착해 생업에 종사하면서 세 안식일에 걸쳐 유다인들과 토론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몇몇 유다인과 많은 이방인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마침내 유다인들의 시기로 그곳을 떠나기까지를 고려한다면, 그 기간은 짧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만큼 또한 테살로니카 공동체에 대한 바오로의 관심과 애정도 컸습니다.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두 번이나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과 편지 내용이 이를 확인해 줍니다. 특히 바오로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쓴 첫 번째 편지는 신약성경 정경 목록 27권 가운데 제일 먼저 쓰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교회의 자취 더듬을 수 있어
바오로의 선교 노력으로 필리피에 이어 마케도니아에서 두 번째로 그리스도 공동체가 형성된 테살로니카는 한때 그리스도교를 박해했던 로마 황제 갈레리우스가 311년 이 지역에 그리스도교를 용인한 이후 황제의 박해 때 순교한 디미트리오스 성인을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됩니다. 이어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테살로니카에서 발표한 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언합니다. 그리고 5세기 초에는 디미트리오스 성인에게 바치는 대성당이 세워집니다. 여러 차례 불에 탔다가 재건되고 한동안은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기도 한 이 대성당은 1917년 대화재 때 다시 타버려 1948년에 새로 지었습니다. 이 성당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 디미트리오스 정교회 대성당입니다.
오늘날 테살로니키(테살로니카)에는 비록 바오로 시대의 유적들은 찾아볼 수 없지만, 바오로 이후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의 유적들이 곳곳에 있어 이를 통해 바오로 사도의 숨결과 테살로니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2000년 역사를 더듬어볼 수 있습니다. 시내 중심부의 테살로니카 광장과 그 한쪽에 있는 야외 음악당 같은 유적들은 2~3세기에 조성된 것들입니다. 또 바오로의 이름을 딴 ‘사도 바오로 거리’를 가다 보면, 로툰다(Rotunda)라고 하는 거대한 원형 벽돌 건물을 만나게 됩니다. 제오르지오(게오르기우스) 성인의 이름을 따 하기오스 게우르기우스(Hagios Georgios)라고 불리는 이 건물은 원래 갈레리우스 황제의 영묘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졌으나 5세기에는 성당으로, 15세기에는 주교좌성당으로, 그리고 16세기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입니다.
테살로니카 교회의 2000년 역사 속에 빼놓을 수 없는 두 형제 성인이 있습니다. 테살로니카 원로원 의원의 아들들로 슬라브인들의 복음화에 크게 공헌해 ‘슬라브인들의 사도’로 불리는 9세기의 위대한 인물들인 성 키릴루스(치릴로) 은수자와 그의 형 성 메토디우스(메토디오) 주교입니다.
<사진설명(위로부터)>
_ 오늘날 테살로니키 전경(BiblePlace.com)
_ 기원 전 5세기에 축조된 암피폴리스 성벽(좌) 아폴로니아에 있는 바오로 기념 경당(우)           (BiblePlace.com)
_ 테살로니카 시내에 있는 로마 시대 광장 유적(BiblePlace.com)
_ 성 디미티르오스 정교회 대성당 내부
_ 성 키릴루스와 성 메토디우스(BiblePlac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