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레지오의 삶_청주 덕암성당 이양철 펠릭스
성모님의 순명 본받아 32년간 활동

유은정 마리아 청주 Re. 명예기자

청주교구 덕암성당(주임신부 정남규 비오) 자비의 모후 Cu. 오흥석 베드로 전 단장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이양철 펠릭스 현 단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양철 펠릭스(66세) 단장은 성당에 다니기 전 천주교와 개신교를 구분하지 못하고, 하느님은 한 분 뿐이라고 알고 있을 당시 개신교를 세 번이나 기웃거렸다. 첫 번째는 유년시절 고향 시골 교회였고, 두 번째는 군대 있을 때였다. 세 번째는 제대하고 청주로 와서 운전기사 일자리를 구했는데 사장이 교회 집사였다. 교회를 다니자고 하여 예배도 참석했지만 마음에 닿는 교회가 아니기에 직장을 그만두고, 택시회사로 옮기게 되었다.
그때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신자인 친누나가 올 때마다 “성당에 다녀”라고 말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에 가면 밥을 먹여줘요? 돈을 줘요?”라며 거절하던 직장동료가 성당에 같이 다니자고 해서 흔쾌히 승낙하고 직장동료와 함께 수곡동성당에서 교리를 배우고, 고 이한구 라우렌시오 신부님께서 펠릭스라는 세례명을 지어주시어 1985년 6월15일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런데 직장 때문에 주일을 지키지 못하고 냉담신자로 지내게 되었다. 친누나는 볼 때마다 “얘야! 주일을 지켜야 된다”라고 말했지만 펠릭스 단장은 “개인택시만 받으면 성당에 가지 말라고 해도 다닐 테니 걱정하지마.”라며 입버릇처럼 말했다. 세례 받고 3년 뒤인 1988년 10월 개인택시사업 면허를 취득하자 정말 날아갈 듯 기뻐서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긴 냉담을 풀고 친누나와의 약속대로 성당에 나가게 되었다.

주회합 참석을 생업보다 우선하여
수곡동성당에서 세례는 받았지만 내덕동으로 이사를 하여 현재 덕암성당(구 내덕1동성당)으로 나가게 되었다. 주일미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어떤 형제님이 레지오를 같이 하자고 했다. 레지오가 뭔지도 모르면서 화요일 저녁미사 후 8시까지 성당으로 오라고 하길래 알겠다고 했는데 깜빡 잊고 있었는데 형제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레지오 회합하러 왜 안 오느냐고…” 저녁식사를 하다 말고 곧장 성당으로 달려갔다.
레지오 활동은 이렇게 시작되어 1988년 11월22일 계약의 궤 Pr. 레지오 단원으로 등록하고 1989년 2월21일 선서를 하면서 정단원이 되었다. 레지오 주회합이 있는 화요일이면 택시를 탄 손님이 먼 곳을 가자고 하였다. 갔다 오면 수입은 늘겠지만 회합에 참석을 못하거나 늦게 되니 한참을 망설이다가 “제가 약속이 있는데 죄송하지만 다른 차를 이용해주시면 좋겠습니다.”라며 거절을 하였다. 같은 일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거절하고 난 후로는 회합 시간 안에 들어올 시간대의 승객만 탔다.
32년 동안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췌장암으로 입원해 있는 2개월을 제외하고는 회합시간에 지각하는 일도, 회합에 빠지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월요일 새벽미사도 빠지지 않고 참례하였다. 옛날 알람시계도 없던 시절 잠자리 들기 전 “성모님! 내일 새벽미사 참례해야 하는데 늦잠 자면 깨워 주세요.”라며 어린아이 같이 기도를 하면, “펠릭스!”라고 부르시는 성모님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 새벽 미사를 갔다고 한다. 췌장암을 극복하고 지금까지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무한한 은총과 자비, 또 성모님의 사랑 덕분에 살아왔음을 굳게 믿으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영광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고 계신다.

성모님 군대로서 할 일을 했다는 자부심으로
성모님의 군대로 정단원이 되었으니 임무 수행을 할 때가 왔음을 깨닫고, 운전대 앞에 예수님, 성모님 상을 나란히 모시고 운행을 했다.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타셨는데 반갑게 성당에 다니느냐고 하시며, “지금도 시험 봐서 합격해야 세례를 주느냐”고 물으셨다. 할머니께서는 “옛날에 세례 받으려고 성당 갔는데 시험에 떨어져서 못 받았다.”며 무척 안타까워하셨다. 그래서 지금도 세례를 받고 싶으시냐고 물었더니, 받고 싶다고 하셔서 성함, 전화번호, 주소를 받아 적고, 관할 성당 수녀님께 할머니의 인적사항을 전했다. 얼마 후 그 본당 신자에게 물어보니 할머니께서 세례를 받으셨다는 말을 듣고, 하느님과 성모님께 감사드리며 성모님의 군대로서 할 일을 했다는 자부심에 레지오 마리애 입단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원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양철 펠릭스 단장은 레지오 권면한 분이 견진대부가 되어 1991년 9월15일 견진성사를 받았다. 지금 현재까지 30명의 대자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말씀을 새기며 사람들을 만난다.
이렇게 신자로 열심히 신앙생활,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하다 보니 공동체 안에서 직책을 하나 둘 맡게 되었다. Pr. 회계부터 서기, 단장, Cu. 단장, 전례부장, 울뜨레야 간사, 남성구역반장, 교도소후원회, 청주가톨릭 운전기사사도회 총무, 회장, 한국가톨릭 운전기사사도회 전국협의회 회장, 본당 평협 회장까지. 때로는 거절도 하고 싶었지만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서 성모님께서 모범을 보여주신 순명의 정신을 본받아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교회에서 맡겨주신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다. 2021년 3월, 다시 한 번 덕암성당 자비의 모후 Cu. 단장 직책을 맡았는데, 코로나19로 활력을 잃어가는 레지오 마리애를 위해 애써 달라는 성모님의 명령으로 생각하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Cu. 단장을 맡았다.
끝으로 이양철 펠릭스 단장은 “레지오 마리애 단원 여러분! 어려울 때일수록 많은 기도와 레지오 정신으로 무장하여 성모님의 군대로서 성모님의 전구로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코로나 19로 힘들어하는 온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청합시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은 기도로 무장된 성모님의 군대입니다. 기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느님 아버지께 다가 갈 수 없음을 확신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