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그분의 손 안에서
성모님의 뜻에 순명하며 살렵니다

허필현 율리아나 경산 치명자들의 모후 Co. 단장

나는 천주교 재단인 대구 효성여중 졸업생이다. 그 시절에는 정규 교과 시간에 종교라는 시간이 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윤 신부님이었고, 종교를 가르친 분은 상담을 담당한 선생님과 수녀님이었다. 매달 전교생이 강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하얀 미사 보를 쓴 친구들이 정말 부러웠고 영성체하던 하얀 밀떡이 어떤 맛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신자가 아닌 다른 친구들은 짜증도 내고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나는 그때부터 천주교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종교 시간만 되면 선생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머니가 절에 다니시는 터라 ‘난 언젠가는 성당에 나가리라’고 다짐한 내 생각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소원은 드디어 이루어졌다. 총각 때 세례를 받은 남편과 1984년에 결혼했다. 남편은 새로운 종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거의 10년을 냉담했는데 내가 1992년에 세례를 받으면서 조당도 풀고 혼배성사도 했다. 그리고 자녀 둘도 자연스레 영세시켰다.
다행히 혼배성사 후 한 번의 냉담도 없이 둘은 열심히 성당을 다녔다. 주일이 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어김없이 성당으로 향하는 모습이 성모님 보시기에 얼마나 기특했을까? 나와 남편은 각자 다른 쁘레시디움에 가입하여서 레지오에 활동을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연세 많은 형님을 따라 기도도 하고 성지순례도 가고 레지오 결석 안 하기도 실천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녀 돌보기, 개인적인 공부 때문에 나의 레지오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그 세월이 8년, 그러다가 2009년 경산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도 힘들었으나 예전부터 성경학교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실현할 수 있었다. 집 가까운 곳에 어버이 성서학교가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성경학교 다니는 중에 레지오 활동도 겸하게 되었다. 레지오 단원이기는 하나 가방 들고 학교만 간다고 왔다갔다 한다더니 매일 까데나 바치기, 묵주기도 5단, 일주일에 평일미사 한 번이 나의 목표였다.
그러던 중에 남편과 내가 중매했던 총각, 처녀가 결혼하게 되었다. 나는 쉽게 세례, 견진성사 대모가 되었다. 성모님의 뜻인지 모든 게 술술 잘 풀렸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더니 2013년도에 남편의 투병이 시작되었다. 나는 도저히 병간호, 직장생활, 가정 생활, 레지오 활동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었다. 몸과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레지오 활동을 또 잠시 접었다. 투병 일 년 만에 남편을 나를 남겨두고 하늘나라로 거처를 옮기고 말았다.
큰아들을 결혼 시킬 때는 앞이 캄캄했다. 성당에서 아들의 혼배성사를 하고 결혼식을 치뤘다. 혼자서 어려운 일을 치르고 힘들 때마다 성모님께 기도드렸다. “성모님, 남편을 의지하며 살다가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드니 도와주세요.”
그러다가 직전 꼬미씨움 단장님의 권유로 꼬미씨움 부단장 직책을 맡게 되었다. 부단장이란 단장을 도와 성모님의 군대를 잘 이끌어나가는 간부 자리였다. 마지막 토요일, 첫 번째 일요일만 시간 내면 된다고 하시더니 그게 아니었다. 여러 가지로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긍정적 사고를 하는 덕분에 슬기롭게 잘 헤쳐 나온 듯하다.

‘앞으로 난 장기기증 홍보대사가 되리라.’
2019년 11월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년 행사 글짓기 부문에서 대상을 받게 되었다. 성모님이 날 어여삐 여기셨나 보다. “대상, 허필현 율리아나” 마이크로 들리는 아나운서의 맑은 목소리가 강당 전체에 울려 퍼졌다. 실내는 정적이 감돌고 수많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추기경 염수정.” 아나운서의 상장 마지막 구절을 읽는 목소리는 더 또렷하게 들렸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최고상은 받아본 적은 없는 나에게 이런 큰 행운이 오다니…. 그때 나의 레지오 단체에서의 직책은 Pr. 서기, 꼬미씨움 부단장이어서 레지오 주회, 꾸리아, 꼬미씨움, 세나뚜스의 월례회에 모두 참석할 때였다. 힘든 걸 이기며 순명이라고 받아들이며 열심히 산 덕에 받은 상이라 생각했다.
시상식은 ‘한 마음 한 몸 운동본부’의 ‘2019 장기 기증자 봉헌의 날’ 행사 일부였다. 남편의 그때를 떠올렸다. 맑고 깨끗한 모습이 편안해 보였다. 가슴 조이며 초조해하던 50여 분간의 수술 끝에 남편은 단정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놓였다. 남편의 각막은 누구에겐가 빛을 밝혀주기 위해 적출되었다. 그의 영혼은 영원히 살아남아 있으리라. 나의 운전면허증 왼쪽 아래쪽에도 장기기증이란 네 글자가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보기만 해도 뿌듯하다. ‘앞으로 난 장기기증 홍보대사가 되리라.’ 생각하며 “성모님 하늘나라 갈 때까지 조 스테파노 잘 지켜 주세요.”라고 기도드렸다. 방에 걸린 사진 속의 남편이 빙그레 웃고 있는 듯했다.

그냥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레지오 단원의 한 사람
그러다가 2020년 5월 단장님의 임기 만료로 능력과 경험이 부족한 내가 단장 임무를 맡게 되었다. 레지오의 본질인 순명을 지키려고 허락했지만 쉬운 자리는 아니었다. 내성적이고 직장 일만 충실히 했지, 성당 일을 해본 적이 없어 서투르고 우왕좌왕이었다. 하지만 믿는 건 오로지 주님과 성모님뿐이다. 성당 갈 때마다 웃는 얼굴로 “단장님 오셨습니까?” 아는 척해 주시는 주임 신부님도 나의 든든한 후원자이다.
성모님의 든든한 배경에 의지하며 행사가 있는 날은 아침에 기도한다. “성모님, 떨려요. 능력도 부족하고 담력도 부족합니다. 좀 진정시켜 주세요.” 직전 단장님은 성당에서 안 해본 직책이 없다고 했지만 나는 해 본 직책이 없어서 서투른 편이다. 먼 훗날 많은 사람이 나를 따르고 이해하리라 생각하며 그냥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레지오 단원의 한 사람일뿐이다.
오늘도 레지오 단원, 꼬미씨움 단장으로서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하는 신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한다. ‘성모님 좀 부족하더라도 살펴봐 주세요. 열심히 성모님을 따르는 주님의 종이옵니다.’ 아침에는 간단한 인사로 일을 시작한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다. 얼른 물러가고 모두 편안한 날이 오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성모님! 저는 성모님 뜻에 순명하며 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