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와 마음읽기
소극적 태도를 미덕으로 돌리는 신자들
(합리화)

다음은 마태오 복음의 예수님 말씀이다. (       ) 안에 들어갈 적당한 말은 무엇일까?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       )도 있다.”(6,21) “(       )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12,34)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      )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18,19) 그렇다. 답은 ‘마음’이다.
이처럼 마음은 생각, 감정과 기억 등이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행동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렇게 중요한 마음이지만 심리학 관점에서 볼 때 마음은 거울처럼 약하고 부서지기 쉽다. 그래서 마음은 상처받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방패막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를 정신분석학(심리학 이론 중의 하나)에서는 “방어기제”라고 한다. 방어기제를 쓰면 일시적으로 마음이 평화로울 수는 있으나 진실을 은폐하게 되어 심하면 노이로제나 정신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방어기제 중에 ‘합리화’라는 것이 있다. 이는 “용납되지 않는 감정이나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이나 사건에 책임을 전가하며 논리적 도덕적으로 그럴듯한 이유를 가져와 설명하는 것”이다. 합리화는 사회적 비판이나 죄의식을 피하려는 본능에서 나오며, 자신의 행동이나 실수를 정당화하기 위해 억지 변명이나 이유를 찾아내는 모습으로 자주 드러난다. 그러나 무의식에서 일어나기에 의식적으로 하는 거짓말과는 구별된다.
합리화의 예는 이솝우화인 ‘여우와 신포도’가 대표적이다. 여우가 포도를 따먹으려고 여러 번 점프를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그러자 여우는 “나는 저런 신포도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하며 돌아선다는 이야기로, 여우는 포도를 먹어보지도 않고 시다고 생각했고 나아가 자신이 그것을 따 먹으려고 노력했음에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다.
합리화는 일상에서 다양하게 볼 수 있다. 아이를 구박하는 엄마가 “너무 잘해주면 아이를 망친다”, “다 저 잘되라고 하는 거야”라고 하는 것이나, 어떤 자리에 초대받지 못하자 바빠서 초대받아도 가지 못했을 거라고 말하는 것, 혹은 직장 상사에게 보고한 것으로 혼나자 그것이 자신의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오늘따라 상사의 기분이 나빠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등이다.

합리화는 사회적 비판이나 죄의식을 피하려는 본능에서 나와
사람은 누구나 욕구가 좌절되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그 아픔을 피하기 위해 합리화를 자주 하게 되면,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합리화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부정하게 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게 하여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기회를 잃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일에 대하여 ‘난 신경 안 써’ ‘별일 아니야’ ‘난 그걸 원하지 않았어’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그건 나한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라는 등의 말들을 하고 있다면 그 생각이 합리화된 것일 수도 있으니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J자매는 입교하여 레지오 단원이 되었지만 열심한 신앙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 본당 신부님께서 모든 Pr.을 재편성하면서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이 자매는 운 좋게도 노련한 선배 단원을 만났다. 선배단원은 모든 활동에 J자매를 데리고 다녔고, 자연스레 선배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선배 단원과 활동에 대해 평가를 하다가 자신이 포기가 빠르고 남의 탓을 자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활동이 어려워져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자신의 생각을 살펴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말한다. “저는 그동안 마음 편한 것이 제일이라는 인생관으로 살아왔어요.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성격 좋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늘 뭔가 부족한 듯 무덤덤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자주 행복을 느껴요. 제가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별하여,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달릴 곳을 다 달려야한다는 심정으로 해내기 시작하면서 그런 듯해요. 그러면서 저의 일상도 꽤 적극적으로 변했지요. 레지오는 저의 삶의 태도를 바꾸어 주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좀 더 신중하자’ ‘남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누가 먼저 착수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등의 말을 할 때가 있는가? 활동대상자들에 따라서 가망이 없는 사람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공격이나 비난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혹은 Pr. 단원 모집이 잘 안 되는 것은 마땅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여기는가? 활동보고시 어떤 활동을 했는가를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선행을 스스로 내세우는 것으로 겸손에 어긋난다고 생각되는가? 교본에는 이 모든 것들이 변명이며 합리화라고 이야기한다.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이 쓰시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선 참된 협력자
복음을 전할 때 신중이나 존중은 실천을 방해하는 체면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으며(교본 426쪽 참고), 활동대상자나 활동에 대하여 ‘가망이 없다’ ‘희망이 없다’ 등의 판단은 활동에 대한 줄기찬 노력과 이루고 말겠다는 굳센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교본 33쪽 참고)
또한 따뜻한 마음씨와 다정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고서는 활동에 성공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격과 비난을 정당화하는 것은 합리화라는 것이다.(교본 421쪽 참고) 뿐만 아니다. 단원모집 실적이 없는 것은 입단에 대해 너무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거나 진지한 노력이 없어서 일 수 있고(교본 272쪽 참고), 성실한 활동보고가 못마땅한 것은 자신의 활동에 대한 쁘레시디움의 세심한 지도를 벗어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교본 188쪽 참고)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이 쓰시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선 참된 협력자이다.(교본 60쪽 참고) 그리하여 우리들은 성모님의 사업에 ‘모든 지능과 능력을 세심한 방법과 인내심으로 가다듬어’(교본 60쪽)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우리 안에서는 변명들이 생겨나 우리도 모르게 ‘소극적인 태도를 일종의 미덕으로 돌리려고 하는 신자’(교본 59쪽)가 될 위험이 크다.
큰 둑은 작은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유혹 또한 작은 것으로 시작하여 단원의 군인정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 레지오 단원이 로마 군단의 정신인 ‘권위에 대한 복종심, 변치 않는 의무감, 장애에 부딪쳤을 때의 인내심, 난관을 이겨내는 지구력, 사소한 의무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충성심’(교본 511~512쪽)을 잊는다면 소금이 그 맛을 잃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때때로 단원들은 “나는 나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기 때문에 성모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며, 성모님이 뜻하시는 대로 좋은 성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립니다.”라고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교본 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