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새 번역 교본 읽기
레지오 사도직(제10장)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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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세나뚜스협의회는 ‘레지오 마리애 공인교본(2014년 영문판)’에 대해 광주대교구 소속 안세환 신부께 번역을 의뢰하였습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번역 교본은 1993년 영문판을 번역한 것으로 1993년 이후로 수차례 부분 수정이 있었습니다. 교본 전체를 새로운 시각으로 번역한 교본의 내용을 본 코너를 통해 계속 게재할 예정입니다.
단원들께서는 새로 번역된 교본의 내용을 검토하시고 내용에 대해 건의가 있을 경우 상급 평의회나 월간지 편집실로 의견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보내주신 내용은 검토하도록 하겠으며, 타당한 의견이나 건의에 대해서는 추후 새로운 교본의 인쇄가 결정될 경우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제10장 레지오 사도직

1. 레지오 사도직의 존엄성
레지오 마리애가 단원들에게 요구하는 사도직이 얼마나 존엄하고 얼마나 교회에 중요한지를 표현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권위 있는 선언보다 더 힘 있는 말씀은 없다.
“평신도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자신의 결합에서 사도직에 대한 의무와 권리를 받는다. 세례성사로 그리스도의 신비체와 결합되고 견진성사를 통하여 성령의 힘으로 튼튼해진 평신도들은 바로 주님께 사도직을 받았다. 평신도들은 모든 활동을 통하여 영적 제물을 봉헌하며 세상 어디에서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임금의 사제로, 거룩한 민족으로(1베드 2,4-10 참조) 축성되었다. 모든 사도직의 생명인 사랑은 성사 특히 성체성사로 전달되고 자라난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3항)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신자들은, 더 정확하게 말해서, 평신도들은 교회 생활의 일선에 서 있습니다. 그들에게 교회는 인간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특별히 교회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바로 교회라는 더욱 분명한 의식을 지녀야 합니다. 교회 모든 사람의 으뜸인 교황의 지도 아래 그리고 교황과 일치하는 주교들의 지도 아래 있는 지상의 신자 공동체입니다. 이들이 바로 교회입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 9항)
“마리아는 인류에게 일종의 도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계신다. 마리아의 영향력을 자연 질서 안에서 물체와 그 구성 부분들을 함께 묶어주는 인력, 친화력, 응집력 같은 물리적 힘에 비유해 봄으로써 가장 잘 헤아릴 수 있다. …… 우리는 마리아가 사회생활과 그 참된 문명을 이루는 모든 위대한 운동에 참여하셨음을 우리가 증명하였다고 믿는다.”(페치탈로 Petitalot)

2. 사도직을 수행하는 평신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사도직을 수행하는 평신도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 명제는, 평신도 신분에 속해 있으면서도 사제와 같은 안목을 갖추고 통제된 친밀함으로 사람들과 만나는 접촉점이 되어주면서 사도직을 수행하는 평신도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톨릭 공동체는 건강하다는 사실에 기반을 둔다. 가톨릭 공동체는 이처럼 사제와 사람들 사이의 일치가 완전히 이루어질 때 안전할 수 있다.
그런데 사도직의 근본정신은 교회의 복지와 사업에 깊은 관심을 갖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은 참여 의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만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사도직 단체는 사도들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거푸집과 같다.
사도직이 지녀야 할 이러한 자질들을 꾸준히 길러 놓지 않으면, 교회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책임감이 전적으로 부족하게 되어 다음 세대에 가서는 분명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미성숙한 가톨릭 정신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리고 교회가 완전히 평온하다는 것 말고는 교회의 안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처럼 무기력한 양 떼는 자기 목자들을 절멸시킬 정도까지 우르르 몰려다니거나, 그렇지 않으면 무대 위로 등장한 첫 번째 사나운 이리 떼에게 잡혀 먹힌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운다. 뉴만 추기경(Cardinal Newman)은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가톨릭 정신의 잣대는 평신도였다.”는 점을 일종의 원리처럼 말하고 있다.
“레지오 마리애의 위대한 역할은 평신도 성소 의식을 일깨우는 것이다. 위험스럽게도 우리 평신도들 교회를 성직자와 수도자들과 동일시해버릴 수 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성직자와 수도자들에게 우리 평신도들 역시 ‘성소’라는 이름으로 배타적으로 일컫는 것을 주셨다. 우리 평신도들은 무의식중에 스스로를 최소한 규정된 의무를 수행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기회가 있는 익명의 군중으로 간주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당신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신다는 사실(요한 10,3)과, 우리처럼 골고타의 현장에 함께 하지 않았던 바오로 성인이 고백한 것처럼(갈라 2,20 참조),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셨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우리 가운데 어떤 이는 예수님처럼 동네 목수이고 어떤 이는 예수님의 어머니처럼 소박한 주부일 수 있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우리 각자는 하나의 소명을 가지고 있으며, 각자 자신만의 사랑과 봉사를 하느님께 드리고 어떤 구체적인 일을 행하라고 하느님으로부터 개별적으로 부르심을 받는다. 그 구체적인 일이란 설령 다른 이들이 더 잘할 수 있지만 우리를 대신해서 할 수는 없는 일을 말한다. 나 말고는 어느 누구도 하느님께 나의 마음을 드릴 수 없고 나의 일을 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레지오가 촉진하는 개인적 종교 감각이다.
레지오 단원은 수동적이거나 피상적인 역할에 더 이상 만족해하지 않는다. 각자는 하느님을 위하여 무엇인가 되어야 하고 무엇인가 행하여야 한다. 종교가 인생에서 아주 평범한 일이라 하더라도 더 이상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며, 개인의 삶에 영감을 부여하는 것이 된다. 이처럼 각자 자신의 소명을 확신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일을 수행하고 제2의 그리스도가 되고 가장 작은 형제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하는 열망, 즉 사도적 정신이 우러나올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레지오는 수도회를 갈음하는 평신도 단체로서, 완덕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이상을 평신도들의 생활 속에 옮겨 놓아 오늘날 세속화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을 넓혀가고 있다.”(몬시뇰 알프레드 오래힐리 Msgr. Alfred O’Rahilly)

3. 레지오와 평신도 사도직
다른 여러 원리와 마찬가지로 사도직도 그 자체로서는 다소 차갑고 추상적이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수 있다. 그 결과 평신도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고귀한 사명에 제대로 응하지 못하거나, 더한 경우에는 응답할 능력이 자신들에게는 없다고 생각할 위험성마저 있다. 그렇게 되면 교회가 펴고 있는 싸움에서 평신도들이 반드시 맡아야 할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독려하려는 노력까지도 포기해버리는 비참한 결과가 빚어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올바로 판단할 수 있는 분으로서 아프리카 선교 지역에 사도좌 사절로 파견되었다가 그 후 중국에서 교황 대사를 지낸 리베리 추기경(Cardinal Riberi)의 말을 들어 보자.
“레지오 마리애는 참으로 매혹적이고 매력적인 형태의 모습을 갖춘 사도직 활동이다. 레지오는 활기에 찬 모습으로 모든 사람들을 끌어들이며, 교황 비오 11세가 정하신 방법, 즉 하느님의 동정 성모께 온전히 의지하는 방법으로 활동을 수행한다. 레지오는 자질을 강조하면서 이를 단원들의 토대와 심지어 수적인 힘의 비결로 삼는다. 레지오는 많은 기도와 자기희생, 정밀한 조직 체계, 그리고 사제와의 온전한 협력을 통하여 보호받는다. 레지오 마리애야말로 현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기적 가운데 하나이다.”
레지오는 합법적 장상에게 드려야 할 마땅한 존경과 순명을 사제에게 드리지만, 단순히 그 정도로 그치지는 않는다. 레지오 사도직은 은총의 주된 통로가 미사와 성사이며 사제는 미사와 성사의 필수적인 교역자라는 사실을 토대로 삼아 세워졌다. 이와 같은 사도직을 수행하기에, 레지오 사도직의 모든 노력과 활동 방법은 병들고 굶주린 군중에게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생명의 양식을 가져다준다는 중대한 목적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레지오 활동의 첫 번째 원칙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사제를 모셔다 드리는 일이 되어야 한다. 물론 사제를 직접 모셔가는 일은 불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제가 미치는 영향력과 사제가 사람들을 이해하고 있다는 차원에서는 어디든 사제를 모셔갈 수 있다.
이것이 레지오 사도직의 본질적인 사상이다. 레지오 사도직은 수많은 평신도 단원들에 의하여 수행되겠지만, 단원들은 사제들과 온전히 일치하고 사제들의 지휘 아래에서 사제들과 전적으로 똑같은 관심을 지니고 활동할 것이다. 레지오는 사제들의 수고를하고 사람들의 삶 속에 사제들이 차지하는 자리를 넓힘으로써, 사람들이 사제들을 맞아들일 때 마침내 사제들을 보내신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것이 될 수 있도록 온갖 열성을 다 바칠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요한 1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