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교회 안 상징 읽기
주님 부활 대축일 그리고 부활절 토끼

이석규 베드로 자유기고가
image_print

하느님의 인류 구원 역사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임을 당하셨다가 되살아나심으로써 완성되었다. 이에 교회는 주님 부활을 겨우내 죽은 듯 보이던 만물이 소생하는 봄철에 기념하고 경하하였다. 그리고 아무런 생명의 낌새도 보이지 않던 달걀에서 그 껍질이 깨어지며 병아리가 탄생하고 무르익은 석류의 과피가 벌어지며 그 안의 씨앗들이 드러나 보이는 것을 보면서, 그리스도인들은 무덤에 묻히셨다가 무덤의 돌문을 열어젖히고 되살아나신 주님을 연상했다. 또한 이렇듯 주님 부활을 상징하는 것들 가운데는 토끼가 있다.

토끼, 다산성과 동정성을 모두 아우르는 상징성
토끼는 중세기 이래로 주님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토끼는 어떻게 해서 주님 부활의 상징이 되었을까.
어떤 이들은 달걀이며 토끼가 바빌론의 생식의 여신 이슈타르의 상징이었다고 말하며, 주님 부활을 경하하는 관습은 단지 이교(異敎)의 의식(儀式)에서 들어온 것일 뿐이라고 폄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실상 이슈타르의 상징은 사자, 올빼미, 문(門), 8각형 별 따위였다. 그리고 유럽에서 토끼는 일찍부터 사계절의 시작인 봄[春]의 동의어로 간주되었고, 또한 30여 일의 짧은 수태 기간을 거쳐 새끼를 여러 마리 낳는 다산 능력으로 해서 흔히 새로운 생명 또는 소생과 관련되는 동물로 여겨졌다.
이보다 앞서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아주 일찍부터 야생 토끼가 죽음과 소생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다. 이러한 생각을 이어받은 그리스 사람들과 로마 사람들은 묘비에 흔히 야생 토끼를 새겨 넣곤 했다. 그리스도인들 또한 이와 같은 상징적 맥락에서 야생 토끼를 죽음과 부활과 연관되는 동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묘비에 야생 토끼를 많이 새겨 넣었다. 나아가, 유럽 전역의 특히 독일과 영국의 교회들에서는 필사한 문서나 군인의 갑옷이며 말[馬]의 가슴받이 따위를 동그라미 안에 야생 토끼 세 마리가 들어 있는 문양으로 장식하곤 했다. 그러한 문양 중에는 토끼 3마리의 귀로 세 변을 이루는 삼각형을 만들어 삼위일체를 나타낸 것도 있다.
그리고 중세기에 이르러 사람들은 봄이 되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는 동식물들을 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해드리도록 하느님께서 그것들을 보내신 것이라고 이해했다. 가령, 스위스의 장크트갈렌(또는 생갈, Saint Gall) 지역에서 9세기에 만들어진 전례서(미사경본)에 나오는 다음 구절은 가톨릭교회가 일찍부터 이해해 온 봄에 대한 관점을 잘 말해 준다.
“모든 피조물이 주님의 부활을 맞아 기쁨의 축제를 지낸다. 음울한 겨울이 지나갔으니, 꽃들은 피어나고, 풀들은 다시금 푸릇푸릇한 녹색 옷으로 갈아입고, 새들은 달콤한 환희에 빠져서 재잘거린다.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하던 해와 달은 이제 그리고 영원히 더욱 밝게 빛난다. 대지는 그분의 죽음에 진저리치며 무너져 내린 듯이 보였으나, 이제는 되살아나신 주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초록색으로 물들어 간다.”
이러한 인식은 봄철에 한꺼번에 새끼 여러 마리를 낳는 야생 토끼에게서 더욱 명백해졌고, 이제 야생 토끼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동물이 되었다. 나아가 야생 토끼는 주님 부활 대축일, 곧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해마다 봄철이 다시 돌아오는 이유라고 생각하던 이 축일과 연결되었다. 그러한 인식과 이해의 흔적으로, 중세기의 수많은 필사 문서들과 그림들에는 야생 토끼들이 귀여운 모습으로 또는 해학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당시에는 야생 토끼는 짝이 없이도 새끼를 낳을 수 있다고 여겨졌고, 그런 점에서 토끼는 정숙함과 동정성의 상징으로도 간주되었다. 빙엔의 성녀 힐데가르트는 자신의 저서 ‘물리학’에서 야생 토끼는 수컷이 암컷이 될 수도 있고 암컷이 수컷이 될 수도 있다는 당시의 속설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믿음이 있었음을 암시했다. 물론 성녀는 이어서 이 믿음이 잘못된 정보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중세기와 르네상스 시대에 성모 마리아를 그린 그림들에는 그분의 발치에 흰 토끼가 배치되기 시작했다. 이는 성모 마리아의 흠결 없는 동정성을 상징하기 위한 소도구였다. 예컨대 티치아노(Tiziano, 1488~1576년)의 작품 ‘토끼의 성모 마리아’(Madonna of the Rabbit)에도 성모님의 발치에 흰 토끼 한 마리가 앉아 있다. 그리스도교가 차츰 전파되고 이와 더불어 이러한 상징성들도 전파됨에 따라, 흰 토끼도 예전의 야생 토끼와 같은 상징성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부활시기의 풍속으로서 부활절 토끼
부활시기의 풍속으로서 부활절 토끼에 대한 첫 언급은 1500년대 독일 문헌에서 발견된다. 이는 독일에서는 토끼의 상징성이 이미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음을 말해 준다. 부활절 토끼의 상징성은 ‘토끼와 동정성’ 그리고 ‘토끼와 되살아남’의 관련성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상징성으로 해서 야생 토끼는, 그리고 흰 토끼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경하하는 부활 축제의 명실상부한 상징이 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절 토끼가 어린이들에게 달걀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보기에 야생 토끼는 달걀(또는 새알)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야생 토끼는 풀밭이나 덤불 속에 둥지를 만들었는데, 이 둥지에 새가 와서 알을 낳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야생 토끼는 알을 낳는다는 속설로 이어졌다. 그리고 알은 이미 주님 부활을 상징하던 터였기에, 알과 밀접해진 야생 토끼 또한 부활절을 상징하는 것들 중 하나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부활절 토끼 관습이 1700년대에 독일 개신교 신자들에 의해 아메리카에 전해졌고,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은 오히려 부활절 토끼와 부활절 달걀을 기피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승은 가톨릭이 독일에서 주류를 이루던 시절에 시작된 것이라고 보는 측면이 더욱 강하다.
이를테면, 가톨릭 신자가 대다수인 룩셈부르크에는 부활절 토끼가 감추어두었다는 달걀과 초콜릿을 어린이들이 찾아 모으게 하는 관습이 있다. 이 관습은 아마도 독일계 국가들에서 중세기 말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룩셈부르크의 가톨릭 신자들은 이 관습을 부활절을 경하하는 그들 나름의 행사에 접목한 것이다. 이 관습은 오스트리아, 영국, 스위스, 덴마크, 그리고 네덜란드에도 있다.
유럽 전역에 걸쳐서 주님 부활 대축일과 관련해서 지내는 여러 가지 아름답고 매력적인 관습들은 예로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들에 근거한다. 예컨대, 성삼일의 첫날인 성 목요일 전례 이후 전례 때 타종하지 않는데, 프랑스와 벨기에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종(鐘)들이 교황을 만나기 위해 로마로 날아갔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그러고는 부활 주일에 바구니들이나 둥지들을 만들어 정원에 가져다 둔다. 어린이들이 온갖 종류의 알들(초콜릿, 곱고 보드라운 천, 삶아서 알록달록하게 색칠한 달걀)로 그득한 바구니며 둥지를 찾아내면, 그것이 교황의 명을 잘 실행하여 착한 일을 한 어린이들에게 보내진 선물이라고 말해 준다.
이런 점에서 토끼며 달걀로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경하하는 관습이 사람들을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초점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우리의 어린이들이 주님 부활을 맞는 즐거움과 경이로움을 더욱 멋지고 아름답게 체험하도록 해줄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 부활 대축일은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며, 그러기에 무엇이든 가능한 날이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