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함께 걷기_ 춘천교구 죽림동 예수성심 주교좌 성당
은총의 100년! 계승의 100년! 영광의 100년!

채용석 베네딕도 춘천 Re.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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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22일 본당 설립 100주년을 맞은 춘천지역 신앙의 요람이자 춘천교구의 상징인 죽림동 예수성심 주교좌 성당(주임신부 홍기선 히지노)을 찾았다.
“지나온 시간은 은총의 100년이었습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그 백 년을 계승하며 미래의 백 년을 열 것입니다. 다가올 100년을 주님의 섭리에 맡기고자 합니다. 영광의 100년이 될 것입니다.”(죽림동 예수성심 주교좌 본당 100년사, 발간사 홍기선 히지노 주임신부)
위 발간사에서 언급되었던 그 은총의 100년을 살아온 분들과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당이 조성되기까지의 여정과 성당 뒤뜰에 조성된 성직자 묘역과 한국 전쟁 중 순교하신 사제들을 모신 순교자 묘역을 돌아보고자 한다.

죽림동 예수성심 주교좌 성당의 설립 과정
죽림동성당의 모 본당은 강원도 최초의 성당인 횡성 풍수원성당이다. 풍수원성당은 1888년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 르메르(Le Merry, 1858~1928) 루도비코 신부가 부임하면서 설립되었다. 당시 풍수원성당 관할 곰실공소로, 풍수원성당의 2대 주임신부였던 정규하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일 년에 서너 번 방문하여 가정집과 강당에서 성사를 집행하였다. 신자 수가 점점 늘어 1920년에는 138명에 이르러 본당으로의 승격과 상주 사제의 필요성이 요청되었다.
당시 공소 회장이었던 엄주언 마르띠노(1873~1955)는 풍수원성당과 서울 명동성당을 오가며 사제의 파견을 열성적으로 요청하였다. 엄주언 마르띠노 회장의 헌신적인 선교 활동과 끊임없는 청원과 기도에 힘입어 마침내 1920년 9월18일 사제 서품을 받은 김유룡 필립보 신부가 뮈델 주교로부터 곰실공소 파견을 명 받았다. 그리하여 곰실공소는 춘천지역의 첫 본당이 되었다.(당시는 경성교구 소속) 곰실공소의 관할은 춘천, 인제, 양구, 홍천, 화천, 가평이며 15개 공소에 신자 수는 약 천여 명으로 추정 된다.

춘천 시대 개막과 시련기
곰실성당은 신자 수가 늘어나면서 더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1928년 곰실에서 약 8Km 떨진 춘천 약사리 418번지의 목조 함석집을 사 성당으로 활용했으므로 춘천본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성당 용지 기금 조성을 위하여 ‘애련회’를 조직하여 기금을 모았으며 엄주언 회장도 자신의 논 다섯 마지기를 팔아 새 성당 건축 기금으로 기증하였다고 한다.
1938년 11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제6대 주임신부로 부임한 구인란(Tomas F. Quinlan 1896~1970) 신부는 현 성당 용지를 사 본당 건축을 계획하였으나 일제 치하에서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외국인을 추방하거나 가택 연금 등을 시켜 착공이 지연되었다. 8·15 광복이 된 후 미군 부대의 도움으로 1949년 4월5일 착공하여 건물이 거의 완공 단계에 이르렀을 무렵 6.25 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춘천 지목구장으로 임명된 구 토마스 신부는 인민군에게 피랍되었고, 성당은 인민군의 포격과 유엔군의 반격 공습으로 한쪽 벽이 무너지고 사제관과 부속 건물이 파괴되었다. 전쟁 중이었지만 복구를 계속하여 1956년 구인란 지목구장이 ‘죽음의 행진’에서 생환하여 6월8일 주보 축일인 예수 성심 대축일에 축성 봉헌되었다. 그 후 구 토마스 주교님과 박 토마스 주교님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장익 십자가 요한 주교님의 부임으로 또 한 번 발전의 계기를 맞는다. 장익 주교님 착좌 후 성당 안팎을 수리하는 중창 작업으로 새롭게 변신하였다.
2003년 6월25일에는 또 다른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1950년대 석조 성당 건축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인정되어 문화재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 등록 문화재 제54호’로 등록되었다. 2010년 3월 제7대 김운회 루카 주교님 착좌 후 죽림동 주교좌 성당 성역화 작업으로 회랑과 야외 십자가의 길 등을 조성하여 새롭게 단장하였다.

성직자 및 한국전쟁 당시 순교 사제 묘역
성당 뒤뜰에는 춘천교구에서 사목하다 선종한 사제들이 잠든 성직자 묘역이 지리 잡고 있다. 묘역 한편에는 한국 전쟁 중 신앙을 증거하고 목자로서의 소임을 다하다 순교한 사제들도 함께 모셔져 있기에 더욱 성스러운 곳이다. 한국 전쟁 발발과 동시에 피난을 권유받았으나 “목자는 양들을 지켜야 한다. 양들을 버리고 갈 수 없다.”라며 각자 임지를 지키다 인민군에게 납치를 당하거나 총살당하신 분들이다.
이들 중 유해를 찾을 수 있었던 분들은 성 골롬만 소속 고 안토니오(Anthony Collier 1913.6.20.~1950.6.27)와 파트리 치오(Patrick Reily 1915.10.21~1950.8.?), 진 야고보(James Maginn 1911.11.15~1950.7.4) 신부다. 38선 이북 지역에서 순교하여 유해를 모실 수 없었던 백응만 다마소(1919~1950.1.5), 김교명 베네딕도(1912.7.15~1950.6.26), 이광재 티모테오(1909.6.9~1950.10.9), 손 프란치스코(Fransis Canavan) 신부의 가묘도 조성되어 있다.
순교자 묘역은 춘천교구 교령 제2017-65호로 2017년 9월17일 춘천교구장 김운회 루카 주교에 의해 성지로 선포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선교사와 본당 사제로서 착한 목자들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헌신하던 사목자들이 잠든 성스러운 곳이다. 춘천교구에서는 교구 순교자들의 시성 시복을 위해 매 미사 전에 시복 시성 기도를 바치고 있다.
지난 1월6일에는 춘천교구 최대의 경사가 있었다. 교구 설정 82년 만에 김주영 시몬 신부가 교구 출신 첫 주교로 임명받아 착좌식을 했다. 교구민의 숙원이었던 교구 출신 교구장을 모시게 되어 교구와 주교좌 성당에 더 큰 발전이 있으리라 믿는다. 죽림동성당은 사제 11명과 수도자 12명을 배출하였으며 신학생 1명을 배출하였다.
100년이라는 긴 세월 수많은 시련과 희생이 있었지만 예수성심의 보호와 성령님의 인도로 많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과 같은 성스러운 성당을 만들 수 있었다고 믿는다. 이제 새로운 100년을 향해 출발하는 죽림동 예수성심 주교좌 성당에 지난 100년보다 더 큰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참고:죽림동 예수성심 주교좌 본당 70년사. 죽림동 예수성심 주교좌 본당 100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