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레지오 영성2
성모님을 닮은 여인 레베카
그리스도의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수원교구 영성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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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마당’이란 유튜브 채널에 올라와 있는 ‘이혼을 앞둔 어느 부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결혼 5년 차 때 이혼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말다툼이 잦아졌습니다. 그리고 각방을 쓴 이후부터는 서로를 투명인간처럼 대하며 살았습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아이는 더 짜증을 내고 말썽을 부렸습니다. 그러니 아이 때문에 부부싸움은 더 잦아졌습니다. 아내는 이렇게 사느니 이혼을 하는 게 낫겠다고 말했고 남편도 함께 사는 게 힘에 겨웠습니다.
어느 날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과일을 파는 할머니가 “여기 귤 떨이인데 안 사가시려오?”라며 남편을 붙잡았습니다. “네, 주세요.”라며 아무 생각 없이 검은 봉지에 귤을 한가득 받아 집에 돌아왔습니다. 귤 봉지를 식탁에 올려놓고는 씻고 나오니 아내가 귤을 다섯 개나 까먹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멋쩍은 듯이 “귤 맛있네.”라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도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귤이었는데 5년 동안 단 한 번도 귤을 사 온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느라고 너무 바빠서 서로 요구만 했지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며칠 뒤 남편은 할머니가 또 그곳에 계시기에 남은 귤을 다 달라고 하였습니다. 집에 가며 하나를 까먹어보았습니다. 맛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것을 다시 식탁에 올려놓고 씻고 나왔더니 아내와 아이가 맛있게 까먹고 있었습니다. “이거 어디서 샀어? 맛있네.” “어 전철 역 할머니에게.” 아내는 자신이 깐 귤을 아들을 시켜 남편에게 주었습니다. ‘난 검은 봉지로 식탁에 올려놓았을 뿐인데.’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려는데 아내가 밥을 해 놓았으니 먹고 가라고 잡았습니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아내표 된장찌개인지.’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러자 아내도 울었습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 미안하다며 자신이 너무 무심했다고 사과했습니다. 아직도 티격태격하기는 하지만 이혼의 위기를 그렇게 넘기고 또 3년을 살았습니다.
오고 가는 마음이 없다면, 또 그 마음을 표현하는 합당한 선물이 없다면 어떠한 ‘관계’도 유지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대상에게 더 주고 싶은 것은 모든 동물의 본성입니다. 하느님은 그렇지 않으실까요? 당연히 당신 사랑에 더 완전하게 응답할 수 있는 인간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신부가 될 정도로 합당한 응답을 드릴 줄 알았던 유일한 분이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은총으로 가득 차 사랑을 실천할 줄 아는 여인 레베카는 성모님의 전형
천사는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라고 인사합니다. 마리아는 이미 은총을 충만히 받은 상태였습니다. 온 세상에 마리아만큼 은총이 충만한 여인은 없었습니다.
교부들은 은총을 충만히 받은 구약 여인의 모델로 ‘레베카’를 제시합니다. 창세기 24장에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의 아내가 될 사람을 찾으러 종을 보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낙타 열 마리와 장차 아브라함의 며느리가 될 사람에게 줄 금은 패물과 옷가지를 들고 떠납니다. 그는 누가 자기 주인의 며느리가 될 것인지 몰라서 주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제가 ‘그대의 물동이를 기울여서, 내가 물을 마시게 해주오’ 하고 청할 때, ‘드십시오. 낙타들에게도 제가 물을 먹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바로 그 소녀가, 당신께서 당신의 종 이사악을 위하여 정하신 여자이게 해 주십시오.”(창세 24,14)
당시 우물가에서 모르는 남자에게 물을 선뜻 내어주는 것은 여자의 명성에 손상을 줄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게다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낙타 열 마리에게 물을 길어준다는 것은 정상적인 여인의 행동이 아닙니다. 보통 낙타 한 마리가 40리터의 물을 마시는데 낙타 열 마리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일은 가히 중노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레베카가 물을 길으러 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소녀 레베카를 보고 “그대의 물동이에서 물을 좀 들이켜게 해주오.”(창세 24,17)라고 청합니다. 레베카는 “나리, 드십시오.”(24,18)라고 말합니다. 또 “낙타들도 물을 다 마실 때까지 계속 길어다 주겠습니다.”(24,19)라며 다시 물을 길으러 우물로 달려갑니다. 레베카는 이웃에게 무조건 좋은 일을 해야만 만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그만큼 이미 받은 것이 많다고 믿는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행위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레베카의 응답을 보고 자신의 모든 보물을 그녀에게 줍니다. 레베카는 그 보물들로 자신의 몸을 장식하고 이사악에게 나아갑니다. 이사악은 아버지의 패물과 옷으로 장식하고 낙타를 타고 오는 한 여인이 자신의 아내임을 확신합니다. 아버지의 선물을 받은 이라면 당연히 자신에게 합당한 신부일 것입니다. 그래서 두말없이 레베카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자신의 모든 유산을 그녀와 함께 나눕니다.
여러 교부는 이 장면을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위해 신붓감을 찾아오라고 가브리엘 대천사를 마리아에게 보내신 것과 같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은 하느님 아버지이시고 아브라함이 보낸 종은 대천사 가브리엘입니다. 대천사 가브리엘은 은총으로 가득 찬 여인을 찾습니다. 만약 은총으로 가득 찼다면 사랑을 실천할 줄 아는 여인일 것입니다. 그러니 레베카가 성모 마리아의 전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레베카와 혼인한 이사악은 마리아를 당신의 신부로 맞이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느님의 종이 가져간 주인의 선물은 가브리엘을 통해 오시는 하느님의 선물인 성령입니다.

하느님의 가족이 되려면 먼저 받은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이 세상에 성모님 외에 온전히 자신을 봉헌할 줄 아는 인간은 없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다 교만하여 주님으로부터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며 하느님 사업에 당신 모든 것을 내어놓으십니다. 아브라함의 종에게 자신을 모두 내어놓아 이사악의 신부가 된 레베카처럼, 성모 마리아께서도 가브리엘 천사에게 모든 것을 내어 맡겨 하느님 아드님의 신부가 되십니다.
교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받는 ‘은총과 진리’에 응답해야 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2787)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은총과 진리를 통해 구원하시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자신을 아낌없이 봉헌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밭에 묻힌 보물의 비유’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의지를 말합니다.
레베카는 하느님과 이웃에게 이미 받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은총에 은총을 받게 됩니다. 성모님께서도 은총으로 가득하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자신을 봉헌하셨습니다. 그랬더니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신부로 하느님의 가족이 되려면 먼저 받은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더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며 우리 자신을 봉헌할 수 있을 때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신부로 맞아주십니다.